1.
우리집 앞은 세상 평화로워 보이고
서울에서 내려와 1박2일 지내고 간 친구가
팬션에 있는 것 같다고 할 만큼
나름 풍경도 주변 환경도 좋다
그러나 이곳 부산의 지형 대부분은 산과 언덕이다
관광이 목적인 외지인에게 알려진 몇몇곳을 제외하면 그렇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같은 경우 마트를 간다거나
체육관을 가려면 거의 등산수준이다
2.
뙤약볕이다 벙거지를 쓰고 체육관을 다녀오다가
썬그라스를 꺼내었다 그리고 해를 바라다 보며 문득,
세상이 갑자기 온통 어두워지는 상상을 했다
무엇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실제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둠을 상상하며 적어도
나는 무엇인가를 잃어본 적이 없다는 것과,
어떤 종류의 상실은 영영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바깥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래전 절교한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글을 읽었다
나 역시 아버지나 형 같은 삼촌... 상실의 경험이 있다
인간을 허물어버리는 절망적 상실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내가 감정이 다소 건조한 탓인지
슬펐지만 끔찍하게 슬프고 두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심드렁해졌다

3.
로봇청소기를 하나 샀다
말년에 시력이 소실 된때의 놀부와 똑같다
식탁밑에 들어 갔다가 의자다리 여기저기 부딪치며
나오지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던 놀부 모습이다
장난삼아 문턱이 있는 화장실을 가보라고 하면
문턱앞에서 멈추고 어쩔줄 몰라 하다가 잠이든다
휴대폰으로 보면 화장실 문턱 앞에서
화장실안을 보여주느라 눈을 뜨고 자고 있다
놀부가 돌아온 것 같다
4.
내가 천식으로 고생하는 이유는
사소한 것에도 유돌이 없이 직관적으로 면역이라는 놈이
달려들어서이다 알레르기의 일종인데
알레르기는 면역성이 높아 생기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이런일 저런일 겪지만 이기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이겨 냈다고 하지만 뭐 특별히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것은 별로 없다
먹고싸고 시간을 흘려 보낸 것,
면역이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기를 걸렸다고 가정하면
회복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거나
팔굽혀펴기를 하지는 않는다
몸이 안 좋으면 휴식을 취하거나 감기약을 먹는 것이
전부인 것 처럼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꾸준히 평생 작동하는 것이 면역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지기를 원한다
매 순간 또한 지나간다
행복도 슬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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